“AUPA ATHLETIC!” -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기원하며
특별히 어느 한 팀을 서포팅(supporting)하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유니폼 저지부터 머플러와 스카프까지 풀 키트를 가지고 있는 팀이 하나 있습니다. 그 팀은 바로 (독특하게도), 스페인 라리가의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 Athletic Club de Bilbao>. 그리고 1976-77시즌 이후 처음으로 2011-12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 아틀레틱 클럽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저와 같이 빌바오를 응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처음 제가 이 팀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04년 미국 시골의 모 캠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두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스페인 친구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스크 출신이라는군요. 어렸을 때 만화책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친해지려고 아는 척을 좀 했었지요. “너희 독립 안하냐?”라고. 그랬더니 그게 이 친구들에게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생면부지의 동양 녀석이 뭔가 자기들을 알아준다는 느낌? 그 친구들은 ‘아, 우리 스페인 출신이긴 한데, 사실 바스크 사람이야’라고 꼭 자기들을 소개했거든요. 그러면 보통 다른 사람들은 ‘그게 스페인이지 뭐’라고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혹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상상해보자고요. 그럼 우리가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할 때, 아마 ‘나 일본 출신이야’라고 이야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일본 출신이긴 한데, 우린 한국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일본출신이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사람들과 달리 누군가가 우리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알아줬다면 얼마나 고맙고도 반가웠을까요.
여하튼 그 인연으로 이 친구들과는 엄청 친하게 지내고 그 인연으로 이듬해 겨울 실제로 스페인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를 찾아가 한 달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빌바오는 스페인 산업혁명의 역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프랭크 오언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노먼 포스터가 통째로 디자인한 지하철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뭐 이런 내용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라고요, 한 달간 느꼈던 건 빌바오, 그리고 바스크 컨트리의 인상은 우리나라와 아주 많이 닮았다는 거였습니다.

<두 바스크 친구 Borja Balparda Bolinaga, Iker Garcia Saez와 함께>
‘엄마, 아빠’가 바스크 말로 ‘암마, 아따’입니다. 그리고 영어, 불어 같은 서구 언어 체계와 다르게 문법적 어순이 한국어와 같습니다.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오고 조사 등의 말이 목적어 뒤로 와서 붙는 형식이더라고요(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밤새 술 퍼먹고 원샷으로 술 먹이고 폭탄주 먹고(와인과 콜라를 섞은 ‘칼리모초Kalimotxo’라는 폭탄주가 최고 인기!) 저한테 돈 못 내게 하고 자기들이 막 쏘는 그런 문화도 왠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두 친구들 덕에 많은 그곳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다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물의 대부분은 ‘바스크 대표팀’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아틀레틱 클럽의 팀 용품이었죠. 흔히 우리 방송에서는 빌바오, 또는 아틀레틱 빌바오라고 쓰지만 공식 명칭은 ‘아틀레틱 클럽Athletic Club’입니다. 그야말로 단순 명료하게 ‘체육부’가 팀 이름인 셈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보통 아틀레틱 빌바오라고 쓰는 경향이. 하지만 분명 공식 명칭은 ‘아틀레틱 클럽’입니다. 그것도 꼭 영어로 표기하는 <아틀레틱 클럽>.

<Athletic Club의 홈 경기장 San Mames>
산업혁명 이후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철광석 산지로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가장 핫한 무역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업혁명의 기술을 가진 영국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스페인에 축구를 전하게 되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되었죠. 아틀레틱 클럽은 1898년에 만들어졌으니, 114년의 역사를 가진 클럽입니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보다도 역사가 깁니다. 그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사실은 프리메라리가가 출범한 1929년 이래 2부 리그로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단 세 팀 가운데 한 팀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두 팀은 바로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그런 산업혁명과 잉글랜드와의 인연이 깊은 역사 때문에 아틀레틱 클럽은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유니폼과 같은 레드와 화이트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처음엔 블랙번 로버스 유니폼과 모양이 같았는데, 유니폼이 더 필요해 사러간 사람이 블랙번 유니폼을 못 구해서 대신 사우스햄튼 유니폼을 사와서 그렇게 됐다나...
| 1903 | 1910 | 1913 | 1950 | 1970 | 1982 | 1996 | 2004 |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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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틀레틱 클럽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유명하고도 독특한 특징은 바로 순혈주의로 알려진 칸테라 시스템입니다. 스페인에 있는 4개 주, 프랑스에 속한 3개 주의 바스크 출신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하는 철저한 바스크에 의한 팀 구성이 원칙이라(프랑스 대표팀의 비센테 리자라쥐가 뛴 적이 있죠), 이런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역사를 꾸려갈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스크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바스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수를 아우르는 유연함이 적용되기도 했습니다(주전 수비수인 아모레비에타는 베네수엘라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한계에도 팀이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놀라움은 자부심이지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 동안에는 하마터면 팀이 강등될 뻔 하기도 했습니다. 2006-07시즌에서는 리그 최종전에 홈에서 레반테를 꺾지 못했다면 강등되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2-0으로 이겨 리그 17위로 간신히 마무리하기도 했지요.
이후 팀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었던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 체제를 거쳐,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한일 월드컵을 참가하기도 했고, 칠레에서는 우리나라의 히딩크급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명장 마르셀로 “Madman” 비엘사를 드디어 2011-12시즌을 앞두고 영입하게 됩니다. 거의 광적인 비디오 자료 분석 및 수집가인 비엘사가 이끄는 축구는 그야말로 ‘만화축구’ 같은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합니다. 최강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했던 마치 농구의 1:1 맨투맨 전면 강압수비 같은 파격이라든지, 시대를 뛰어넘은 충격적 스리백 포메이션으로 칠레를 세계무대에 소개했던 남아공의 도전이라든지 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마르셀로 비엘사, "El Loco(Madman)">
아틀레틱 클럽 특유의 칸테라 시스템 때문에 두터운 스쿼드는 갖출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올시즌에는 유로파리그에 몰입하게 되면서 비엘사가 만든 아틀레틱 축구는 세계 축구에 또 한 번의 경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에게는 박지성의 맨유가 관심의 중심이지만, 그 거함 맨유를 상대로 막강한 프레싱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엮어낸 16강 2연전의 큰 승리는 박지성이 선발로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패배의 충격 보다도 아틀레틱 클럽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었죠.
홈에서는 무적의 면모를 보였던 샬케04를 상대로 거뒀던 4강전 원정 4-2 대승, 준결승 2차전 페르난도 요렌테가 종료 직전 터뜨린 극적이었던 결승골 등등, 아틀레틱 클럽의 파죽지세는 단지 승리 이상의 감동과 짜릿함을 전해줬습니다. 미칠듯한 압박과 점유율, 포지션 체인지에 탄탄한 기본기와 화려한 개인기의 조화, 하비 마르티네스, 수사에타, 무니아인 등의 영건 미드필드와 ‘사자왕’ 페르난도 요렌테의 결정력도 매력적이지만, 후반에 보통 투입되어 마치 ‘1선 수비수’같은 최전방 압박 수비(?)를 펼쳐대는 토케로의 질주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사자군단 Athletic Club의 '사자왕' Fernando Llorente>
이제 결승전에서는 같은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나게 되었네요. 아틀레티코는 아틀레틱 클럽 출신의 바스크 학생들이 마드리드로 건너가 만든 위성 클럽으로 시작된 팀입니다. 형제 클럽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유니폼도 똑같습니다(레드와 화이트의 세로 줄무늬). 한 때 독재자 프랑코 시절의 정책으로 팀 명칭에 스페인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던 시절에 아틀레틱 클럽도 스페인어식 표기인 ‘아틀레티코’란 이름을 썼던 시절도 있지만, 그런 강압적 정책이 폐기된 이후에는 전통의 영어이름인 아틀레틱을 사용하죠. ‘아틀레틱’과 ‘아틀레티코’의 유로파 결승 대결.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세계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낸 아틀레틱 클럽. 대한민국에서 새벽에 그들의 경기를 HD 라이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이제 그 축구에 흠뻑 매료되어 그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AUPA ATHLETIK!(아틀레틱 만세!) 저는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의 우승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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