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PA ATHLETIC!” -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기원하며

“AUPA ATHLETIC!” -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기원하며


 

특별히 어느 한 팀을 서포팅(supporting)하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유니폼 저지부터 머플러와 스카프까지 풀 키트를 가지고 있는 팀이 하나 있습니다. 그 팀은 바로 (독특하게도), 스페인 라리가의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 Athletic Club de Bilbao>. 그리고 1976-77시즌 이후 처음으로 2011-12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 아틀레틱 클럽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저와 같이 빌바오를 응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처음 제가 이 팀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04년 미국 시골의 모 캠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두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스페인 친구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스크 출신이라는군요. 어렸을 때 만화책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친해지려고 아는 척을 좀 했었지요.너희 독립 안하냐?”라고. 그랬더니 그게 이 친구들에게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생면부지의 동양 녀석이 뭔가 자기들을 알아준다는 느낌? 그 친구들은 , 우리 스페인 출신이긴 한데, 사실 바스크 사람이야라고 꼭 자기들을 소개했거든요. 그러면 보통 다른 사람들은 그게 스페인이지 뭐라고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혹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상상해보자고요. 그럼 우리가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할 때, 아마 나 일본 출신이야라고 이야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일본 출신이긴 한데, 우린 한국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일본출신이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사람들과 달리 누군가가 우리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알아줬다면 얼마나 고맙고도 반가웠을까요.

 

여하튼 그 인연으로 이 친구들과는 엄청 친하게 지내고 그 인연으로 이듬해 겨울 실제로 스페인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를 찾아가 한 달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빌바오는 스페인 산업혁명의 역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프랭크 오언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노먼 포스터가 통째로 디자인한 지하철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뭐 이런 내용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라고요, 한 달간 느꼈던 건 빌바오, 그리고 바스크 컨트리의 인상은 우리나라와 아주 많이 닮았다는 거였습니다.

 

<두 바스크 친구 Borja Balparda Bolinaga, Iker Garcia Saez와 함께>


엄마, 아빠가 바스크 말로 암마, 아따입니다. 그리고 영어, 불어 같은 서구 언어 체계와 다르게 문법적 어순이 한국어와 같습니다.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오고 조사 등의 말이 목적어 뒤로 와서 붙는 형식이더라고요(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밤새 술 퍼먹고 원샷으로 술 먹이고 폭탄주 먹고(와인과 콜라를 섞은 칼리모초Kalimotxo’라는 폭탄주가 최고 인기!) 저한테 돈 못 내게 하고 자기들이 막 쏘는 그런 문화도 왠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두 친구들 덕에 많은 그곳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다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물의 대부분은 바스크 대표팀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아틀레틱 클럽의 팀 용품이었죠. 흔히 우리 방송에서는 빌바오, 또는 아틀레틱 빌바오라고 쓰지만 공식 명칭은 아틀레틱 클럽Athletic Club’입니다. 그야말로 단순 명료하게 체육부가 팀 이름인 셈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보통 아틀레틱 빌바오라고 쓰는 경향이. 하지만 분명 공식 명칭은 아틀레틱 클럽입니다. 그것도 꼭 영어로 표기하는 <아틀레틱 클럽>.


<Athletic Club의 홈 경기장 San Mames>

 

산업혁명 이후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철광석 산지로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가장 핫한 무역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업혁명의 기술을 가진 영국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스페인에 축구를 전하게 되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되었죠. 아틀레틱 클럽은 1898년에 만들어졌으니, 114년의 역사를 가진 클럽입니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보다도 역사가 깁니다. 그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사실은 프리메라리가가 출범한 1929년 이래 2부 리그로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단 세 팀 가운데 한 팀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두 팀은 바로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그런 산업혁명과 잉글랜드와의 인연이 깊은 역사 때문에 아틀레틱 클럽은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유니폼과 같은 레드와 화이트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처음엔 블랙번 로버스 유니폼과 모양이 같았는데, 유니폼이 더 필요해 사러간 사람이 블랙번 유니폼을 못 구해서 대신 사우스햄튼 유니폼을 사와서 그렇게 됐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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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ic Club 키트 변천사 (출처:Wikipedia)>

 

무엇보다 아틀레틱 클럽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유명하고도 독특한 특징은 바로 순혈주의로 알려진 칸테라 시스템입니다. 스페인에 있는 4개 주, 프랑스에 속한 3개 주의 바스크 출신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하는 철저한 바스크에 의한 팀 구성이 원칙이라(프랑스 대표팀의 비센테 리자라쥐가 뛴 적이 있죠), 이런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역사를 꾸려갈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스크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바스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수를 아우르는 유연함이 적용되기도 했습니다(주전 수비수인 아모레비에타는 베네수엘라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한계에도 팀이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놀라움은 자부심이지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 동안에는 하마터면 팀이 강등될 뻔 하기도 했습니다. 2006-07시즌에서는 리그 최종전에 홈에서 레반테를 꺾지 못했다면 강등되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2-0으로 이겨 리그 17위로 간신히 마무리하기도 했지요.

 

이후 팀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었던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 체제를 거쳐,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한일 월드컵을 참가하기도 했고, 칠레에서는 우리나라의 히딩크급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명장 마르셀로 “Madman” 비엘사를 드디어 2011-12시즌을 앞두고 영입하게 됩니다. 거의 광적인 비디오 자료 분석 및 수집가인 비엘사가 이끄는 축구는 그야말로 만화축구같은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합니다. 최강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했던 마치 농구의 1:1 맨투맨 전면 강압수비 같은 파격이라든지, 시대를 뛰어넘은 충격적 스리백 포메이션으로 칠레를 세계무대에 소개했던 남아공의 도전이라든지 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마르셀로 비엘사, "El Loco(Madman)">

 

아틀레틱 클럽 특유의 칸테라 시스템 때문에 두터운 스쿼드는 갖출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올시즌에는 유로파리그에 몰입하게 되면서 비엘사가 만든 아틀레틱 축구는 세계 축구에 또 한 번의 경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에게는 박지성의 맨유가 관심의 중심이지만, 그 거함 맨유를 상대로 막강한 프레싱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엮어낸 162연전의 큰 승리는 박지성이 선발로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패배의 충격 보다도 아틀레틱 클럽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었죠.

 

홈에서는 무적의 면모를 보였던 샬케04를 상대로 거뒀던 4강전 원정 4-2 대승, 준결승 2차전 페르난도 요렌테가 종료 직전 터뜨린 극적이었던 결승골 등등, 아틀레틱 클럽의 파죽지세는 단지 승리 이상의 감동과 짜릿함을 전해줬습니다. 미칠듯한 압박과 점유율, 포지션 체인지에 탄탄한 기본기와 화려한 개인기의 조화, 하비 마르티네스, 수사에타, 무니아인 등의 영건 미드필드와 사자왕페르난도 요렌테의 결정력도 매력적이지만, 후반에 보통 투입되어 마치 ‘1선 수비수같은 최전방 압박 수비(?)를 펼쳐대는 토케로의 질주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사자군단 Athletic Club의 '사자왕' Fernando Llorente>

 

이제 결승전에서는 같은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나게 되었네요. 아틀레티코는 아틀레틱 클럽 출신의 바스크 학생들이 마드리드로 건너가 만든 위성 클럽으로 시작된 팀입니다. 형제 클럽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유니폼도 똑같습니다(레드와 화이트의 세로 줄무늬). 한 때 독재자 프랑코 시절의 정책으로 팀 명칭에 스페인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던 시절에 아틀레틱 클럽도 스페인어식 표기인 아틀레티코란 이름을 썼던 시절도 있지만, 그런 강압적 정책이 폐기된 이후에는 전통의 영어이름인 아틀레틱을 사용하죠. ‘아틀레틱아틀레티코의 유로파 결승 대결.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세계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낸 아틀레틱 클럽. 대한민국에서 새벽에 그들의 경기를 HD 라이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이제 그 축구에 흠뻑 매료되어 그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AUPA ATHLETIK!(아틀레틱 만세!) 저는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의 우승을 응원합니다!





Iker Muniain Iker Muniain (C) of Athletic Bilbao celebrates with his teammates during the UEFA Europa League semi final second leg match between Athletic Bilbao and Sporting Clube de Portugal at the San Mames Stadium on April 26, 2012 in Bilbao, Spain.

 

 


야구를 기다리는 하나의 이유

 

달력에 표시된 연도가 2012년이 되었다새해가 밝았다하지만 아직도 세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프로야구가 막을 올린다심지어 아직 전지훈련을 떠나지 않은 팀들도 있다한겨울이라 내가 하는 사회인 야구 리그도 쉬고 추위는 절정이라 밖에 나가 몸을 풀기도 망설여지는 계절의 한 복판그러나 2012년이 되었다는 표면적 사실은선명하게 곧 새로운 야구가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몸을 감싸도록 만든다. 1월이란그런 달이다.

 

그리고 이번 겨울은 특히 야구를 몸서리치게 기대하게 할 이유로 넘쳐난다그 순위를 모두 매기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스타들다시 돌아온 스타들이다이름만을 듣고 이렇게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또 있었던가박찬호가 돌아왔다메이저리그 124한국 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스타박찬호다아무리 전성기가 지났어도아무리 구위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한국 프로야구그것도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승엽이 돌아온다감히 국민타자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던 유일한 선수심지어 야구 외적으로도 이승엽 선수가 가진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그 스토리를 이어나가게 될 것인지 스포츠팬들에게는 주말 연속극보다도 수목 미니시리즈보다도 기대하게 만든다이승엽 선수가 이제는 은퇴한 양준혁 선수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몇 개나 깰 수 있을까. 2012년이 됐다는 뜻은그 해답을 던져줄 첫 번째 시즌이 이제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김태균이 돌아왔다명성에 걸맞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복귀라고도 볼 수 있지만,대한민국 대표팀 4번 타자의 시즌을 다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게다가 그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 연봉 선수(뜨거운 논란이 있지만)가 되었다실력은 둘째치고라도 자기 몸값에 얼마나 어울리는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또는 시즌 후의 활약을 어떻게 금액으로 산출해 어떤 대차대조표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겠다.

 


돌아오는 건 선수만이 아니다선동열 감독이 기아의 사령탑에 취임하는 건 분명 엄청난 컴백이다삼성을 이끌고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낸 이미 훌륭한 감독의 커리어를 가진 선감독이지만 그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그것도 이순철 수석코치와 이종범을 이끌며 호랑이 군단의 지휘봉을 잡는 일은 90년대 타이거즈 절대왕조를 추억하는 모든 야구팬들의 기분을 완전히 오묘하게 만들어 버린다.타이거즈 팬들의 참을 수 없는 벅찬 기대감과 반대로 옛 악몽을 떠올리는 타 팀 팬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그 순간이 내년 시즌의 기대를 한없이 끌어올린다여기에 선동열 감독이 키워낼 MVP 윤석민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건 보너스와도 같다.

 


김은식 작가의 책 <야구의 추억>을 읽으면 느낄 수 있지만스타들은 우리가 야구를 기억해내고 그 순간을 곱씹어 추억하게 만드는 아이콘이다. ‘선동열’ 이름 하나는 다른 선수들처럼 어느 야구단의 엔트리혹은 그날의 라인업 중 하나에만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시대적으로는 80년 5월의 광주에서 시작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아이콘으로절대왕조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고 90년대를 호령한 스포츠의 아이콘으로나고야의 태양이 되어 한국과 한국야구를 일본에서 빛냈던 문화적 아이콘으로 그 이름은 확장이 된다우리가 최동원과 장효조라는 전설을 떠나보낸 날의 거대한 상실감은 그 이름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온 모두의 인생과 추억에 너무나 깊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물이라는 아이콘을 통해서만 야구를 바라보는 일은 위험하다한 선수의 팬으로 야구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상처는 다양하다프로야구 구단과 선수와의 관계는 높은 도덕이 지배하는 아름다운 미덕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나는 선수협을 처음 결성하려던 12년 전의 순간을 기존 체제에 대한 분노로 기억하는 한편겉으로는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운 지금의 선수협 내부의 갈등을 바라보며 분노의 기억이 어떤 실망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맞이한다가장 화려했던 SK의 순간을 함께 한 팬들에게는 김성근 감독과의 이별을 지켜보는 일이누군가에게는 구단에 대한 실망으로또 누군가에게는 마운드에 불을 지를 정도의 분노로비로소 누군가에게는 야구에 대한 실망과 미움으로 변주된다.

 

시간이 흐르고시대가 변한다는 건 과거의 영웅들을 떠나보내는 인사와도 같은 일이다영원할 것만 같던 최고의 선수도슬프지만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스타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2군으로그리고 사라진다전설로 기억되거나,혹은 그냥 잊히거나그 빈자리를 메운 젊은 스타들은 다시 새로운 영웅으로 각광 받고 최고의 선수가 되어다시금 사라지고 잊히기를 반복한다박찬호이승엽,김태균 같은 최고 선수들의 복귀가 새로운 야구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그들이 우리의 기대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선동열 감독의 위대한 컴백이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대만큼 위대한 결과로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인물이라는 상징에 갇히면 우리는 야구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돌아오는 스타들이 혹시나 우리의 기대만큼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내가 사랑하던 선수가 성적이 떨어지고누군가는 이제 은퇴하거나 무대 뒤로 사라져 더 이상 볼 수 없어도부상을 당해 더 이상 예전처럼 활약하지 못하더라도슬프고 아쉽지만 그게 야구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다른 모든 이유를 뒤로 밀어두고도 여전히 다가올 야구를 참을 수 없이 기대하게 하는 분명한 이유는 존재한다.

 

이제 석 달 정도가 지나면 야구가 시작된다는그 사실 하나다그 뿐이다지금처럼 야구가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있을 때도몇 년 전처럼 야구가 인기가 없어 모두들 위기를 이야기하던 시간에도언제나 야구는 있었고게임은 펼쳐졌다그래서 그 시간들의 기억들이 하루하루 두터워져서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위대한 아이콘이 되었고또 누군가가 새롭게 등장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올해도 변함없이 게임은 펼쳐질 것이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야구는 계속될 것이다그 사실 하나가 모든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이야기를 만든다모든 건 야구가그곳에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다. 100일 뒤면 야구가 시작된다그리고 8개 구단의 오백여명의 선수들이 만드는 게임들이 어김없이 펼쳐질 것이다나는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2012. 1.



스토브리그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이란 말도 있듯야구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고단한 생활의 하루하루는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농축되고, 9회 말 역전을 꿈꾸는 타자의 마음은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인생의 격언으로 확대된다.야구를 왜 그렇게도 좋아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딱히 대답할 답이 없을 때 꽤나 멋지게 둘러대며 할 말은 바로 야구는 인생을 닮았잖아.”라는 거 아니냐.

 

하지만 언제부턴가 야구는 인생을 닮은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는 것 같다스마트폰이 생기고 증강현실을 보여주는 앱이 보편화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과 마찬가지로언제부턴가 야구는 직유든 은유든 인생의 어떤 비유에 그치지 않은 채 인생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회사 퇴근하고 학교를 마치는 생활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 시작되는 야구는, 이제 하루에서 가장 소중하고 인생에서 가장 유의미한 시간으로 확장된다이를 시작으로 우리 팀의 패배에 다음 하루 일과가 엉망이 되고 기적 같은 승리에 직장의 고된 시간이 장밋빛으로 변하는 것은 벌써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이제는 우리 팀 선수들의 이름을 성 빼고 부르면서 현진아대호야찬호 형종범 삼촌의 가족 경계로 확장되는 일들이 발생한다인생의 축소판이 아니라 확장 버전인 셈이다.

 

스토브리그에 리그’ 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시즌이 끝난 지금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야구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프로야구 이적 시장의 핫뉴스들은 가족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때론 억장이 무너지는 인신매매급 소식들이기도파랑새가 물고 온 장밋빛 소식들이기도 한다하루아침에 FA 시장에서 팀의 중심 선수들을 우르르 잃어버리거나 돌아온 프랜차이즈 스타를 영입하는 등의 이적 뉴스들은 더도 덜도 않고 애들이 집단 가출한 옆집 쌍둥이네와 돈 벌러 집 떠났던 큰 형이 집에 돌아왔다는 앞집 소식들을 전해 듣는 것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거기에 골든글러브, MVP, 신인상 등의 시상식을 지켜보는 마음은 우리집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착한 일 했다고 상 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반면 우리 팀 선수는 상을 못 탔는데 옆집(?) 싫어하는 바로 그 선수가 상을 거머쥐면 또 얼마나 속상하고 배가 아픈가야구와 인생의 경계가 모호해지니 스토브리그는 따뜻한 아랫목이 아닌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야구 시즌은 이제 1년 365일로 늘어나 버린 셈이다.

 

A가 B라고 B가 A라는 법은 없지만, 야구가 삶이 되어버린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야구에서 인생을 배우는 경지를 벗어나 인생에서 야구를 배워내는 경지에 이르렀다야구라는 스포츠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고단한 어른들에게 안식을 주는 존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피곤과 스트레스좌절과 짜증을 잔뜩 안겨주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어떡할까한편 내가 좋아하는 우리 팀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홀대하는 프런트돈 없고 약한 다수의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는 연맹 등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삶의 모습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더러운 생활의 발견이다.

 

그러나 야구는 인생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그건 바로 봄이 오면 깨끗한 백지 상태의 순위표를 받아 볼 수 있다는 것매 해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깨끗하게 잊고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영원한 가능성이 제공된다는 사실그리고 새해에는 올해처럼 환상적이거나또는 올해와는 틀림없이 무언가 멋지게 달라지리라는 이유 없는 희망이 샘솟아 나는 일이것이 야구가 진짜 우리 인생이기를 바라는 모두의 속마음이 아닐까다만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내년에도 답이 안 나온다며 슬퍼하던 모 팀 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2011. 12.



대한민국 야구, 최고의 순간


프로야구 출범 30주년을 맞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이 선정되었다. 최다득표를 한 헐크이만수, ‘국보급 투수선동렬, ‘악바리박정태를 비롯해, 한대화, 양준혁, 장효조, 김재박, 이순철, 김기태.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별명을 떠올리면 어제의 그라운드가 오늘처럼 펼쳐지는, 기꺼이 전설이라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을 스타들이다.

 

전설의 탄생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첫 번째 필요조건은 기록이다. 숫자로 객관화된 그들의 기록은 압도적이고 물론 위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대한 선수가 전설이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선동렬이 몸을 풀면 상대팀이 경기를 포기했다는, 박정태가 오늘은 꼭 이겨야 한다는 한 마디에 플레이오프 승부가 뒤집혔다는, 일본을 상대로 뛰어 올랐던 김재박의 기적 같은 개구리 번트, 그리고 한대화의 역전 쓰리런 홈런 같은,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전설을 완성시키는 건 시간의 힘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고, 사람들의 입을 타고, 때로 흐릿해진 기억의 두께까지 덧입혀지면, 그 때의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비로소 전설이 되는 것이다.


 

비록 3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레전드가 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 있다. 박찬호, 이종범, 이승엽 같은 선수들이다. IMF때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코리안 특급, 신인 한국시리즈 MVP를 시작으로 역대 최강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청부사였던 바람의 아들, 그리고 타자라는 이름에 처음으로 국민을 붙게 했던 선수. 그들의 기록도, 이야기도 전설적이지만 이들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아직 전설이 되지는 못한다. 다만, 분명 전설로 남을, 현재일 뿐이다.

 

국민 타자이승엽은 특히 전설의 조건인 강렬한 기록과 기적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8회 말의 사나이. 마쓰자카를 상대로 뽑아낸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의 8회 결승타. 일본의 자존심을 꿇게 했던 2006 WBC- 또 하나의 도쿄대첩의 주인공.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50홈런, 아시아 신기록 56홈런. 꿈같았던 대구구장의 잠자리채 물결과 베이징 올림픽의 기적 같던 홈런까지. 그리고 그가 선사한 이야기는 하나가 더 있다.


 

국민 타자의 눈물

 

아시아 홈런 기록을 세운 대한민국의 국민 타자는 이듬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시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일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2004년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다저스에서 제시했던 액수는 국민 타자가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도전기는 선수 한 명의 도전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야구의 도전이었다. 야구 종주국 메이저리그의 벽은 그처럼 높았고, 국민 타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자존심도 상처받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이승엽은 다저스 대신 선택했던 소속팀 지바 롯데 마린스를 재팬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제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정한 대한민국의 4번 타자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쿄대첩, 아시아 예선 일본전 그가 터뜨렸던 도쿄돔의 8회 역전 투런 홈런은 이치로의 30년 발언을 딛고 대한민국 야구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세워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은 불합리한 구조의 대회였다. 개최국 미국의 결승 진출과 우승을 만들기 위해 본선에서 야구 강팀인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를 같은 조에 억지로 밀어 넣고 자국 팀은 상대적으로 쉬운(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던) 한국과 일본, 멕시코와 같은 조에 배치시켰으니 말이다. 국제 공인 대회라고 하기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이익과 대회 흥행, 시청률이 우선한 이벤트 성격이 너무 강한 대회였다.

 

그러나 미국의 오만했던 야망은 일본과의 첫 경기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일본의 3루 주자 태그-업 상황을 오심으로 뒤집고 43 한 점차 승리를 거두었지만 야구 종주국의 자존심은 심각하게 상해버린 뒤였다. 반면 이어지는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이승엽의 대회 4호 홈런이 터졌고, 그렇게 멕시코마저 격침시킨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파죽의 4연승을 달린다. 이제 다음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대결이었다.

 

다윗과 골리앗

 

4연승의 팀과 위기의 팀의 대결. 야구는 흐름의 경기이긴 하지만, 이름값은 무시 못 할 변수이다. 누가 보기에도 승리는 한쪽으로, 그것도 위기의 팀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미국 야구 대표팀. 벅 마르티네즈가 이끄는 이 올스타 팀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내민 로스터에는 올스타 외야수 버논 웰스가 1번 타자, 데릭 지터가 2, 켄 그리피 주니어가 3,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4, 치퍼 존스가 5번 타자였다. 뒤이어 제이슨 베리텍, 마크 테셰이라, 맷 홀리데이가 이어지는 꿈의 라인업에 선발 투수로는 신인왕에 빛나는 폭주 기관차돈트렐 윌리스가 나섰다.


 

돈트렐 윌리스가 던진 패스트볼은 그러나, 1회부터 이승엽에게 걸렸다. 그들은 한 때 메이저리그로부터 홀대 당했던 아시아의 사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승엽이 가볍게 받아친 공은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선제 투런 홈런. 이승엽의 대회 5호 홈런이었다. 그제야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은 이 경기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대한민국 야구팀의 실력은, 진짜였다.

 

미국이 만회 한 점, 다시 한국이 추가 한 점을 내고 31의 상황, 한국은 선발 손민한이 1실점 한 후, 3이닝을 마치고 내려갔다. 미국으로서는 본격적인 추격을 시작해야 할 상황. 그러나 4회 말 대한민국은 다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냈고, 대회 홈런 선두에 빛나는 이승엽이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장면

 

그러나 모두의 눈을 의심하는 장면이 그때 펼쳐졌다. 벅 마르티네스 감독의 선택은, 이승엽의 고의사구였다. 추격의 타이밍에 만난 추가 실점에 대한 부담은 상당하지만, 경기는 아직 4회 말에 불과한 상황이었고, 그들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이었으며, 투수는 메이저리거 댄 휠러였다. 상대는 그들이 이름도 잘 알지 못하던 아시아의 한 선수였을 뿐이었다. 그것도 실력 부족을 이유로 2년 전에 문전 박대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결국 메이저리그의 선택은, 그를 피해 달아나는 방법이었다.

 

제이슨 베리텍이 일어나 왼팔을 옆으로 뻗어 볼을 빼도록 주문했다. 타격 자세를 취하지 않은채 당당하게 선 이승엽의 모습과 그를 경원한 휠러의 뒷모습이 오버랩 됐다. 메이저리그의 굴욕.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라 부를만 했다. 이승엽은 천천히 1루로 걸어 나갔고 우리 방송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흥분의 탄성을, ESPN 캐스터는 탄식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진 최희섭의 타구가 엔젤스타디움의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쓰리런 홈런. 이제 점수는 71이 되었고 주관 방송사인 ESPN에서는 의미심장한 자막을 내보냈다. 이번 대회 콜드게임 규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자막이었다. 콜드게임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은 대한민국 야구팀에 너무나 큰 실력 차이를 절감하고 중간에 백기 투항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알려주는 자막이었다.


 

전설은 때로 신화가 된다

 

오릭스 버팔로스 하위 타순에 들어있는 이승엽의 이름을 보는 일은 그래서 불편하다. 전 세계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던,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이 두려워 도망치던 그의 위용을 찾아보기도 이제는 쉽지가 않다. 몇 년 전의 엄지 수술은 그의 완벽한 밸런스에 선명한 금을 내버렸고, 이후 부진한 성적을 스스로 삭여내던 인고의 시간이 그에게 당당함을 앗아가 버렸다.

 

그러나 국민타자가 2군을 오간다는 이유로 무참히 욕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멋진 전설 같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8회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린 후 마음고생 끝에 내비친 그의 눈물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대한민국 야구 사상 가장 멋진 순간을 선사한 사나이며, 무엇보다 이 전설 같은 선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여전히 기적 같은 부활을 꿈꾸며 땀을 흘리고 있는 이승엽. 전설이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날 때, 전설은 마침내 신화가 된다.



전설은 어느날 그렇게 시작된다

그 날은 시범경기가 펼쳐지는 평일, 그것도 대낮이었다. 그러나 여느 시범경기와는 무언가 다른 날이었다. 평일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대전구장에는 무려 1만 5천여 명의 관중들이 북적거렸고, 단지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중계팀을 포함한 수많은 스포츠매체의 촬영기자들이 분주하게도 자리싸움을 벌였다.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그날은 바로 류현진과 김광현의 역사적인 첫 맞대결이 성사된 날이었다.

한국 야구사에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를 꼽아보라면 분명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일 것이다. 스무 살의 어린 왼손 투수가 하늘 위에서 내리꽂은 슬라이더는 준결승에서 일본을 잠재웠고, 그보다 딱 한 살이 많을 뿐인 왼손 투수가 던진 체인지업은 결승에서 쿠바를 무너뜨렸다. 9전 전승의 금메달. 그 꿈같은 영광과 함께 한 것은, 그렇게 대한민국 야구 사상 최고의 좌완 듀오가 탄생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전. 고등학교 때의 팔꿈치 수술로 1년이 넘는 재활을 보낸 한 어린 투수의 데뷔전을 주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17 탈삼진 완봉승으로 청룡기를 거머쥔 우수 투수라 해도, 어디까지나 2순위 지명 선수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의 데뷔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야말로 야구판은 난리가 났다. LG를 상대로 7과 1/3이닝 3피안타 1볼넷 무실점, 그리고 10탈삼진! 믿을 수 없는 밸런스와 아름답도록 매끄러운 투구폼으로 완벽한 몸쪽 직구를 던지던 날씬한(!) 청년의 이름은 바로, 류현진이었다. 전설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은 어느 날 그렇게 시작되었다.


1년 후, 또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안산공고 시절 19탈삼진의 주인공. 고교 최대어.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MVP. 대표팀 에이스. 모두 한 소년 선수를 일컫는 수식어였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김광현이었다. 1차 지명으로 SK 유니폼을 입은 그의 입에서 모든 기자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름 아닌 1년 선배 류현진과의 맞대결에 대한 각오였다. (이때의 당돌한 발언으로 김광현 선수는 구설에 휘말리게 되는데, 당시 개막 특집을 만들었던 내가 알기로 그 대답들은 모두 기자들이 연출했던, 만들어진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1년 만에 새 전설이 탄생하기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의 데뷔는 ‘충격과 공포’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전반기 방어율은 4점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MVP-신인왕 동시 석권의 전설을 만든 류현진과의 비교는 그렇게 끝나버렸고, 2군으로 내려간 이후에는 김광현은 잊혀진 이름이 되나 했다. 그러나 전설은 아직 시작도 되기 전이었으니, 그 시작은 모두의 기대가 다 저문 그 해의 마지막 순간, 바로 한국 시리즈였다.

SK와 두산의 2007년 한국시리즈. 두산의 2승, SK의 1승으로 맞이한 4차전. 두산의 선발은 1차전 완봉승의 주인공, 최고의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였다. 평균 자책, 다승, 승률 3관왕으로 시즌 MVP까지 거머쥔 그가 나선 4차전, 이에 맞서 SK가 내놓은 선발카드는 바로 김광현이었다. 시즌 MVP와 시즌 3승 7패 고졸 신인투수의 맞대결. 누가 보기에도 김광현은 버린 카드라고 생각할 만 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가 저버린 순간, 그렇게 전설은 시작된다.

[7과 1/3이닝, 1피안타 무실점, 탈삼진 9개] 바로 그것이 고졸 신인 김광현이 MVP 리오스를 상대로 거머쥔 성적표였다. 그 경기는 한국 시리즈 1, 2차전을 내준 SK가 시리즈를 원점으로 만들어 주었고 결국 SK의 우승을 일군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되었다. 류현진 이후 1년 만에 한국 야구는 또 하나의 젊은 에이스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결코 맞붙은 적이 없었다. 둘의 맞대결은 김광현이 처음 데뷔하던 바로 그 날부터 모두의 관심이자 소망이었지만, 너무나 큰 부담에서 어린 에이스를 보호하려는 노감독의 배려였는지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아무튼 둘의 맞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둘의 맞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을수록, 그렇게 시간이 하루 이틀 계속 흘러갈수록, 언젠가 찾아올 둘의 맞대결은 점점 신화적인 요소를 갖춰가고 있었다.


2011년 3월 15일. 그 날은 어디까지나 시범경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기대가 그 경기를 더 이상 시범경기에만 머무르지 않게 했다. 처음에는 애써 의미두지 않으려는 표정이 둘 모두의 얼굴에 가득했지만 2회에 터진 SK 정상호의 홈런으로 무언가 바뀌어버렸다. 류현진의 얼굴이 일순 굳어진 동시에, 반대편 덕아웃의 김광현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까지나 시범경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갑자기 강속구를 뿌리기 시작했다.

3회말, 대졸 신인 나성용이 김광현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1대 1 동점. 그리고 오재필의 2루타, 정원석의 내야 안타 등으로 김광현은 추가 2실점. 4회말 황당하게 울려퍼진 민방위 사이렌을 신호로 둘의 맞대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맞대결이라고 하기에는 우스웠던, 3시간짜리 스펙타클 액션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대작 영화의 30초짜리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던 경기였다. 맞다. 그 경기는 어디까지나 시범경기에 불과했다.

야구팬으로 살며 가장 두고두고 원통한 일은, 선동렬과 최동원의 역사적인 맞대결을 놓친 일이다. 아무리 야구도 모르던 초등학교 1학년의 시절이었다고 해도, 86년의 그 대결을 놓친 바람에 나는 항상 어른들이나 형들에게서 애 취급을 당해야 했다. “네가 그 경기를 알아?” 그 후, 정삼흠과 선동렬의 완투 맞대결, 선동렬과 박충식의 맞대결, 이상훈과 김상진, 임창용과 진필중,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무수한 명승부를 봤어도 언제나 애 취급당하는 이유는 그거 하나였다. 최동원과 선동렬의 맞대결, 그 경기를 못 봤다는 그 사실 하나.


어느 날 늦은 오후 사무실에서 접했던 2006년 류현진의 아름다운 그 시작처럼, 김광현의 전설을 목격한 그 날의 한국시리즈처럼, 감히 전설이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설익고 풋풋하지만, 분명 전설이 되리라 확신하는 그 목격은 야구팬으로서 나에게 영원한 자부심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또 모르는 일이다. 그 날의 시범경기가 나성용이라는 유망주의 위대한 시작을 암시하는 치밀한 복선으로 남을지는. 언제나 전설은 어느 날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야구를 보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류현진과 김광현, 둘의 맞대결. 어느 순간 둘은 마주할 수밖에 없을 테고 어느 순간 둘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맞대결의 역사적인 목격자가 되는 일은 야구팬의 사명과도 같은 일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랑스럽게 입에 달고 살 말이 하나 생기게 될 것이다. “야, 너 그 경기 직접 봤어? 못 봤으면 말을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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